1.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inicus)는 1473년 2월 19일, 현재의 폴란드 중북부에 있는 당시 한자동맹 도시인 토룬에서 태어났다. 코페루니쿠스는 폴란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독일의 작센에 속했던 폴란드 남부 대도시 크라카우의 대학에 입학해 수학 및 천문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신학교에 입학하게된다.

코페르니쿠스는 당시 주류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콜라학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천제관축과 궤도계산을 통해 본인만의 천문학을 만들어나갔고, 결국 당시의 지배적 논리였던 천동설을 의심하며 지동설을 주장하게 된다. 과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이라 할 정도로 중세 과학의 암흑기에서 과학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2. 지동설

1)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천문학

기원전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에우독소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천동설을 주장하며,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믿었다. 이러한 천동설은 지속적으로 계승, 발전하였다. 

이후 기원전 3세기 무렵의 아폴로니우스와 기원전 2세기의 히파르코스는 행성은 원 위에 있는 작은 원 위를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작은 원을 주전원, 큰 원을 대원이라 부른다.) 두 가지 이상의 원운동이 결합하여 행성의 진행방향이나 속도가 변화한다고 주장하여, 그동안 부족했던 행성의 밝기변화, 순행과 역행의 속도차이 등을 대략적으로 설명해냈다.

이후 프톨레마이오스는 기하학적 모델을 제시하여 이러한 천동설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모원"이 존재하고, 모원에 의해 운반되는 작은 원인 "주전원" 이 존재한다며, 행성은 주전원을 따라 회전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두 원운동이 결합됨에 따라 행성이 모원 속으로 들어가 지구에 가장 가까운 상황이 되었을 때,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움직이는 것 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2) 코페루니쿠스의 의심

코페르니쿠스는 본인만의 관측과 수학적 방법으로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이 행성들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립한 원칙이나 논리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과학자들은 하늘의 천체와 행성들이 모두 지구를 중심으로 등속 원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원운동은 시작도 끝도 없이 무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번째는 태양의 궤도였다. 모든 행성이 등속운동을 한다면 사계절의 길이 또한 91.25일로 같아야 하지만, 봄부터 겨울까지 각각 계절의 길이가 달랐다. 이를 통해서 태양의 운동속도가 일정하지 않거나 또는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되었다.

두번째는 행성들의 운동을 관측한 결과 매우 불규칙했다. 화성이 평균속력에 비해 훨씬 더 느리게 움직일 때도 있었고, 반대로 더 빨리 움직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2년에 한번 저도 별들 사이에서 화성이 동쪽으로 점점 느리게 움직이다가 멈춘 뒤 여러 달 동안 뒤로 움직이다가 다시 동쪽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이러한 행성의 운행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논리들은 천체들의 무한한 운동을 설명하는 고대의 개념들에는 잘 맞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코페르니쿠스는 합리적 의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기존의 천동설을 의심하게 된 의문점은 크게 2가지였다.

첫번째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주장하는 태양과 달을 포함한 각 행성들이 주전원을 그리며 지구를 중심으로 궤도를 따라 돌고 있다고 가정하면, 우주를 총체적이고 일관되게 설명할 수 없다.

두번째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주장한 달의 궤도는 편차가 커서 한 달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일정 기간 지구 가까이 접근해 있어야만 했다. 그러면 관측상의 크게 역시 크게 달라져야 했는데, 현실을 그렇지 못했다.

이러한 의문점을 가지고 본인만의 방법으로 관측과 수학적 계산을 하던 코페르니쿠스는 결국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닌 태양임을 알아냈다.

3)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코페르니쿠스는 결국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닌 태양임을 밝혀내고, 지동설을 주장했다.

그의 지동설은 기존의 프톨레마이오스가 주장했던 모델에서 지구와 태양의 위치만을 바꾼 것이였다. 원형 궤도와 주전원, 이심 등 기존의 프톨레마이오스의 모델은 그대로 사용했다.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코페르니쿠스 쳬계라고 부른다.

코페루니쿠스 체계는 기존의 프톨레마이오스 모델에서 설명불가했던 부분들을 해결해 주었다.

우선 행성들의 순서와 운동 주기에 대한 부분이였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 주위를 회전하는 행성들을 회전주기 순으로 나열하여, 주기가 짧은 순서대로 지구와 가깝게 배치하였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회전 주기가 약 1년으로 비슷한 태양, 금성, 수성들의 배치 순서를 결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 체계에서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두번째는 행성들의 역행에 대한 부분으로 기존 천동설로 이를 설명하려면 주전원과 등속 중심 등의 매우 복잡한 논리가 필요했지만, 코페르니쿠스 체계 상에서는 우주구조 자체로서 설명이 가능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러한 지동설을 주장하면서 40페이지 원고형태의 요약본인 <짧은 해설서> 를 통해 우주의 기본모델을 설명했고, 이후 그러한 논리를 발전시켜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라는 책을 출판했다.


3. 코페르니쿠스의 과학혁명

현재 많은 역사가들은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판한 1543년을 과학혁명이 시작된 시기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되어 프톨레마이오스까지 내려온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오류를 2000년만에 바로 잡았기 때문에 과학혁명의 중간적 존재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의 지동설에 의해 그 당시 신의 사랑한 유일한 존재였던 인간에 대한 존재적 의문점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중세 서양의 우주관, 인간관, 세계관의 근본적 뿌리를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