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작 뉴턴

아이작 뉴턴은 1642년 영국 링컨셔의 울즈소프에서 출생했다. 세 살 때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조부모에게 양육되었다가, 열 살 때 양부가 사망하면서 이복형제들과 함께 다시 어머니에게 양육되었다.

성공회 신부인 외삼촌의 도움으로 1661년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당시 케임브리지는 중세시절의 교육과정을 답습하고 과학을 비롯한 당시 신학문은 거의 가르치지 않아, 뉴턴은 독학과 사색을 통하여 학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갈릴레오, 케플러, 베이컨, 데카르트, 보일 등의 과학혁명의 선구자들을 연구했고, 모어를 통해 연금술사들과 마술사의 사상인 헤르메티시즘도 연구했다.

1655년 영국 전역에 유행한 흑사병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이 휴교하자, 고향으로 돌아온 뉴턴은 1655년부터 2년간 중요한 과학적 발견들을 이루어 냈다. 뉴턴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는 만유인력의 법칙, 미적분학, 색상이론 등이 모두 이 시기에 나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뉴턴은 이후 1667년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 특별연구원이 되었고, 2년 뒤 스물여섯이라는 어린나이에 루카스좌 교수로 채용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광학을 강의하면서 당시 널리 사용되었던 굴절 망원경이 상이 찌그러지거나 흐릿해보이는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기존 볼록렌즈 대신 오목거울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반사망원경을 발명했다. 이 발명으로 뉴턴은 왕립협회 회원이 되는 영광을 누리면서 유명한 과학자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뉴턴은 1689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왕립 조폐국 이사와 왕립협회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2. 뉴턴의 업적

1) 운동에 관한 3법칙

a. 제 1법칙 : 관성법칙

물체는 현재의 운동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는데 이를 관성이라고 한다. 물체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러한 관성으로 인해,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거나 물체에 작용한 힘의 합이 0이면 정지해있거나 현재의 운동상태를 계속 유지한다.

물체가 현재의 운동속도를 계속 유지하게 되는 운동을 등속도직선운동이라고 한다.

b. 제 2법칙 : 가속도법칙

물체 운동의 시간적 변화는 물체에 작용하는 힘의 방향으로 발생하며, 힘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법칙이다. 여기서 물리학의 기본이 되는 공식이 나오는데, 운동의 변화를 힘과 가속도로 나타내면, "F = ma" 가 된다. 

즉 물체에 특정한 힘이 작용하게 되면 물체는 그 힘에 비례한 가속도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의 비례상수를 질량이라고 하고, 이 방정식이 물리학의 기초가 되는 뉴턴의 운동방정식이다.

c. 제 3법칙 : 작용-반작용 법칙

두 물체에 서로 힘이 작용하고 있을 경우, 한 쪽 물체에 작용하는 힘과 다른 쪽 물체에 작용하는 힘의 크기는 동일하고 방향은 반대이며, 이 때의 한 쪽에 작용하는 힘을 작용이라고 하면 다른 쪽에 작용하는 힘은 반작용이라고 정의한 법칙이다.

즉 두 물체에 작용하는 힘은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라는 법칙이다.


2) 만유인력의 법칙

아이작 뉴턴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바로 사과나무와 만유인력의 법칙일 듯하다.

아이작 뉴턴은 생전에 만유인력을 어떻게 발견했냐는 질문에 대해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닐 때 교정에 앉아있다가 우연히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두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은 아닌ㄹ가 생각하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뉴턴은 달의 운동과 케플러의 법칙을 연관시켜, 달과 지구사이에서 작용하고 있는 힘은 달과 지구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뉴턴은 태양과 행성 사이에서 작용하는 인력이 두 천체의 질량과 거리에 의해 결정되므로 어떠한 특정한 천체에 국한하여 이러한 힘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종류와 상관없이 질량만 가지고 있다면 모든 물체 사이에 이러한 힘이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즉 만유인력의 법칙은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두 물체 사이에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 질점 사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인력이 작용한다는 법칙이다.


3) 미적분

미적분에 대한 개념은 영국의 뉴턴과 독일의 라이프니츠 각각에 의해 세워졌다는게 학계의 정설이다.

1684년 라이프니츠가 <악타 에루디토룸>에 미적분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자 당시 수학자들은 라이프니츠가 뉴턴의 생각을 훔쳤다고 비난했다. 당시 해당 논쟁에 대해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영국의 수학자들과 독일의 수학자들 간에 미적분학의 창시자가 누군인지를 놓고 격렬한 언쟁이 벌어졌다. 뉴턴이 라이프니츠보다 앞서 연구를 시작한 것은 분명했지만, 당시 뉴턴은 미적분학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않았고, 라이프니츠는 연구에 대한 결과가 나오자마자 발표하였다.

이후 사실관계야 어찌되었든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은 유럽대륙의 호응을 얻게 되었고, 현재 많은 나라의 학교에서 채택된 미적분학은 라이프니츠의 기하학적 접근방법이다.


3. 뉴턴에 대한 평가

1687년 발간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는 고전역학과 만유인력의 기본 구조를 제시하며, 과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적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책에서 만유인력과 뉴턴의 운동법칙을 발표했다.

뉴턴은 케플러의 해성운동법칙과 그가 발견한 중력 이론 사이의 지속성을 입증하는 방버으로 지구와 천체 위의 물체들의 어떻게 운동하는지를 증명하여 과학혁명을 발달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최초로 실용적인 반사망원경을 제작했고, 프리즘을 통한 스펙트럼을 관찰하여 빛에 대한 이론도 발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