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니스트 솔베이

알칼리성 물질인 소다회(Na2Co3)와 가성칼리(K2CO3)의 효과적인 제조법을 공업화하여 유리, 비누, 직물 등의 다양한 제품의 제조법을 발명한 벨기에 과학자 솔베이는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솔베이는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물리학, 사회학을 연구하는 국제과학연구소 설립에 쏟아부었고, 과학자들의 학술회의를 후원하기도 했다.


2. 제 5차 솔베이 회의

솔베이는 기금을 기부하여, 세계 정상급 물리학자들을 초청하여 3년 주기로 솔베이 회의를 열였다. 이 회의에는 당대 가장 저명한 물리학자들이 모여 주요한 물리학 주제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했다. 특히 1927년에 진행된 제5차 솔베이 회의는 양자 물리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 5차 솔베이 회의는 1927년 10월 24일부터 29일까지 브뤼셀에 있는 솔베이 연구소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는 보어, 퀴리, 로렌츠, 플랑크,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드브로이, 보른, 에렌페스트, 아인슈타인 등 당시 물리학계의 거장들이 모두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코펜하겐 출신 닐스 보어는 그동안 연구했던 양자 물리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발표했다. 이 발표가 현재 양자 물리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코펜하겐 해석이다. 코펜하겐 해석의 내용은 이미 이탈리아 코모에서 열렸던 볼타 서거 100주년 기념 강연에서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솔베이 회의에 참석했던 물리학자들은 닐스 보어의 해석에 대한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다.


3.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논쟁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발표가 끝나자, 아인슈타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당시 솔베이 회의는 보어의 새로운 해석과 발견에 대한 축하의 자리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이같은 아인슈타인의 공격으로 회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토론의 장이 되어버렸다. 

아인슈타인은 자연현상은 확률적인 방법이 아닌 엄격한 인과법칙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며, 보어가 주장한 상보성 원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박을 시작했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해석의 불완전성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수많은 예와 논리를 펼쳐내기 시작했고, 보어는 이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사고실험을 제안하여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불완전성을 입증하고자 했다. 아침에 제안된 사고실험에 대해 물리학자들은 하루종일 그 문제에 대해 토론을 했고, 저녁 즈음 보어가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사고실험으로도 코펜하겐 해석을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더욱더 복잡한 사고실험을 제안했지만 번번이 보어의 논리에 막혀 코펜하겐 해석의 불완전성 입증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패턴의 논쟁이 지속되자, 동료 과학자들은 과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비판했던 것과 같이 본인이 보어의 양자이론에 대해 맹목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충고하기도 하였지만, 아인슈타인은 듣지 않았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구시대적 인물로 여겨지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4. 아인슈타인과 코펜하겐 해석

양자역학에 개척자라 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이 보어의 새로운 양자이론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들린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은 1921년 "빛은 양자라는 작은 에너지 알갱이이다." 는 사실을 밝혀낸 광전효과 연구에 대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기도 했다. 이 연구는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을 확인할 수 있게된 핵심적인 연구로 양자 물리학 발전에 큰 발판이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보어가 베를린에서 원자 이론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던 1920년에 처음 만났다. 이후 보어가 덴마크로 돌아간 이후 아인슈타인은 보어에게 편지를 보내 "내 인생에서 당신처럼 같이 있는 것 만으로도 즐거움을 준 사람은 없었다." 라는 편지를 보내 보어에 대한 호감을 표현했고, 보어는 "당신을 만나고 당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가장 큰 경험 중 하나였다." 라는 답장을 보내 둘은 아주 돈독한 관계가 되었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이 코펜하겐 해석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 것 또한 아이러니하게 보여진다.


5. 코펜하겐 해석이란?

보어가 주축이 되어 제안되었던 코펜하겐 해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입자의 상태는 파동함수에 의해 결정되며, 파동함수의 제곱은 측정값에 대한 확률밀도를 나타낸다.

2) 물리량은 그것이 관측 가능할 때에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물리적 대상이 가지는 물리량은 관측과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가지고 있는 값이 아니라 관측작용의 영향을 받게 된다.

3) 서로 관계를 가지는 물리량들은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는 하이젠베르크가 제안한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른다.

4) 전자와 같은 입자들은 입자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을 상호보완적으로 가지고 있다.

5) 양자 도약은 가능하다. 양자 물리학적으로 허용된 상태들은 불연속적인, 특정한 물리량만 가질 수 있으므로,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한 상태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다른 상태에서 나타나야 한다.


6. 아인슈타인의 부정

아인슈타인은 기본적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은 현재의 상황과 절대적인 물리법칙으로 모두 예측가능하다고 믿었다. 현상이 무작위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현재의 우리가 숨어있는 변수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이해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의 법칙을 완전히 이해하고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면, 미래에 일어날 모든 현상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느 것이 그의 믿음이였다.

솔베이 회의 이후 막스 보른이 슈뢰딩거의 파동함수를 확률 파동으로 재해석하여 이를 발표하였고, 아인슈타인은 슈뢰딩거 방정식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담은 편지에서 "나의 가슴은 슈뢰딩거의 연구로 더이상 뜨거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인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밝히면서 양자역학 물리학자들과 다른 길을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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