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하네스 케플러
요하네스 케플러는 1571년 독일에서 태어난 수학자, 천문학자이자 점성술사이다.
독일 바일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4세 때에 천연두를 앓는 등 육체적인 병약함과 경제적인 빈곤 속에서 자랐다. 튀빙겐 대학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였으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감복하여 천문학을 공부하게 된다.
이후 1594년 그라츠 대학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강의하고, 1595년 천체력, 1596년 우주구조의 신비를 출판하면서 행성의 수와 크기, 배열간격에 대한 자신만의 논리를 주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브라헤와 갈릴레이를 알게 된다.
1600년 그라츠 대학을 떠나 프라하로 이동하여 브라헤의 제자가 되어 화성의 운행을 관측하면서 천체 관측과 천문학 연구에 몰두 한다. 이후 브라헤가 세상을 떠나자 후계자 자격으로 궁정 수학자가 된다.
케플러는 1609년 화성관측 결과를 <신 천문학> 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행성 운동의 제 1법칙인 "타원궤도의 법칙" 과 제 2 법칙인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 을 발표하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성을 수정/발전 시킨다.
이후 1619년 <우주의 조화> 를 발간하면서 "행성운동 제 3법칙"을 발표한다.
2. 행성운동의 법칙
1) 제 1법칙 "타원궤도의 법칙"
케플러는 화성의 궤도에 관한 관측과 검토를 통해 행성운동의 법칙을 찾아내고자 노력했다. 그는 코페르니쿠스가 본인의 이론에서 배제했던 상응점을 이용하여, 화성 궤도의 여러 근사치를 지속적으로 계산하여, 관측결과와 2분 범위 내에서 거의 일치하는 모델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해당 모델이 특정한 부분에서 관측결과와 8분이나 차이가 나면서 오류가 확인되었다. 이에 케플러는 전통적으로 생각되어왔던 행성의 원운동의 궤도를 버리고 타원궤도를 대입하기 시작했다.
케플러는 기하학적 비율법을 적용하여 화성의 전체 궤도에 대한 계산을 다시 시작했고, 결국 1605년 초에 화성의 궤도가 전대 천문학자들의 지배적인 생각이였던 원모양이 아닌 타원형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하여 "행성은 태양을 한 초점으로 하는 타원궤도를 그리면서 공전한다." 고 발표했고, 이것이 행성운동의 제 1법칙인 "타원궤도의 법칙" 이다.
2) 제 2법칙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
최초 케플러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태양이 하나님 아버지의 상징이며, 태양계 천체의 움직임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케플러는 행성과 태양의 거리변화에 따라 행성 속도에 변화가 생긴다고 생각하여, 태양과 행성의 거리가 가까우면 행성이 빠르게 움직이고, 반대로 태양과 행성의 거리가 멀어지면 행성이 느리게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케플러는 엄청난 양의 수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궤도 주기에 대한 연구를 통해 원일점과 지구와 화성의 근일점 측정을 기초로 하여 행성의 운동 비율은 태양까지의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하여 "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가상적인 선분이 같은 시간동안 쓸고 지나가는 면적은 행성과 태양 사이 거리에 관계없이 항상 동일하다." 는 행성운동의 제 2법칙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 을 발표했다.
3) 제 3법칙 "조화의 법칙"
케플러의 제 3법칙은 주기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케플러는 행성의 공전주기와 장반경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결국 케플러는행성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궤도의 장반경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을 밝혀내, 공전주기와 장반경 사이에 대한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케플러의 제 3법칙을 이용하면, 특정 행성의 주기만으로도 태양에서 행성까지의 거리를 계산해낼 수 있다. 이 법칙은 관측가능한 모든 행성에 보편적으로 적용되어 "조화의 법칙" 이라 불리게 되었다.
3. 케플러에 대한 평가
케플러의 이러한 행성운동에 관한 법칙들은 바로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석학이라 할 수 있었던 갈릴레오나 데카르트 등도 케플러의 <신천문학>을 무시했고, 당시의 천문학자들은 천문학에 물리학을 대입하려고 하는 케플러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여러 천문학자들은 천체에 대한 관측과정에서 케플러가 발표하고 예측했던 현상이 그대로 구현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케플러의 이론과 그 이론에 대한 응용물들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케플러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코페르니쿠스 천문학 개요>는 많은 유럽 천문학자들에게 읽혀졌고, 케플러가 사망한 이후 그의 아이디어들을 전파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1630~50년까지 이 책이 천문학 교본으로 사용되면서 당시 완벽한 원의 형태라고 생각했던 천문학의 기초를 타원으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또한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 제3법칙을 연구를 통해 우주의 천체나 행성들에게도 정량적 물리법칙들이 그대로 적용 가능함이 밝혀지면서 그동안 신비주의에 쌓여있던 천체운동과 천문학이 과학의 세계로 편입되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케플러는 천문학 뿐만 아니라 자연철학, 과학철학과 과학사에서도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17세기 과학혁명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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